< 작가노트 >

 

 작품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, 작품이 더욱 단순해지기를 바란다. 움직임이 최소화 된 선, 최소한의 색, 그리고 최소한의 의지. 그 안에 진정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고 믿는다. 그리고 그 단순함은 나에게 맞는 움직임과 호흡들이 모여 이루어진다. 어쩌면, 나에게 그림은 그린다는 것이 아닌, 행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.

 이십 대 즈음, Mark Rothko 작품 앞에서 숨이 멎을 듯 했다. 당시에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. 삼십 대가 끝나갈 무렵, 윤형근 작가의 작품 앞에서 다시금 그때의 감정에 사로잡힌다. 지금 와 생각해보면, 그것은 아마 작품 안, 삶을 초월해 죽음을 평온히 품으려는 작가의 모습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. 내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역시, 삶과 죽음 사이 어디 즈음, 그 희미한 경계일지 모르겠다. 있음을 넘어선 어떤 것, 무슨 말로도 채워지기 힘든, 작품 앞에 섰을 때 비로서 그 존재가 보이기를 바라는. 그것이 코끝을 오가는 들숨과 날숨의 형태로, 혹은 성글어진 씨실과 날실 사이 이리저리 통과하는 공기 몇 그램의 무게로 다가오기 바란다.